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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빚, 소비의 욕망을 잠시채워주는 마약 같은 것
    브라더 책상/에세이 2020. 6. 18. 14:09

     

     

     

     

    자본주의 사회에서 빚은 필수가 되어버렸다. 돈 많은 사람이나 없이 사는 사람이나, 빚이 없는 사람은 없다. 물론 극소수 중에는 없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빚을 지지 않고 살 수 없는, 그런 사회가 되어버렸다. 대학을 갈 때도, 결혼할 때, 집을 살 때 등등 대부분의 사람들은 빚을 진다.

    빚과의 첫 만남은 대학 등록금이었다. 합격통지서와 받아 든 등록금 고지서의 금액은 적지 않았다. 외환위기로 가정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으로 학교 생활을 했다. 학교 다니는 내내 늘어나는 것 빚뿐이었다.

    빚을 자꾸 지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누군가에게 갚을 부채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자신이 빚쟁이라는 사실을 까먹고 자산가가 되어, 그들처럼 돈을 소비한다. 정말 큰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남의 돈이 내 주머니에 들어오자 고통이 되었다. 빚을 지고 쓰다 보면, 돈에 대한 가치를 망각한다. 스스로 번 돈이 아니기 때문에,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갈 때 스스럼없다. 만약, 힘들게 스스로 번 돈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몇 번은 더 생각했을 것이다. 대학 등록금 빚을 지면서도, 그것을 언제 어떻게 갚지라는 생각은 없다. 그냥 망각했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졸업 후 채무상환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 졸업과 동시에 빚은 조금씩 들들 볶기 시작했다. 

    취업을 하고 돈을 벌었다. 돈이 생기자, 또 쓸데없는 곳에 뇌가 관심을 갖는다. 자동차.

    '있으면 여자 친구랑 편하겠지. 가고 싶은 데 갈 수 있고. 00를 위해 하나 사자.'

    등록금 부채도 남아있지만, 그것을 상환하려는 노력은 없다. 돈이 생기니 또 소비 벽이 돋았다. 자동차와 좋아하는 여자 친구. 돈은 할 일이 점점 늘어났다. 돈은 자기가 부족하면 친구를 데려와, 소비하게 만들었다. 친구의 이름은 네 글자. 성은 신 씨다. 신용카드. 돈의 친구는 화끈했다. 비록 돈 때문에 만났지만, 돈이 없을 때에도 언제든지 달려와 소비하게 했다. 밤낮을 안 가리고. 그렇게 점점 친해진다. 이제 돈보다 신용카드와 더 가까워졌다. 신용카드는 항상 말했다. 

     

     

     

     

    "친구가 더 필요하면 이야기해, 다른 곳에 사는 친구 많아."

    그렇게 여러 신용카드를 소개받았다. 그들이 합쳐 펼치는 소비의 총공세는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부족하지 않았다. 그렇게 빚은 내 머릿속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 친했던 신용카드 하나가 화를 내기 시작한다. 너무 착하고 친절했던 신용카드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돌변했다. 겁도 준다. 충격이다. 무섭다. 소비와 욕망으로 가득 찼던 인생은 이제 하루하루 신용카드와 싸우는 일로 바뀌었다. 자꾸 싸우다 보니 신경이 예민해진다. 여자 친구도 싫다. 

    "갑자기 왜 그래? 사랑한다며?"

    돈과 신용카드 없이 여자 친구를 대하니 싸움만 늘어난다. 예민해진다. 그리고 결국 00이가 헤어지자고 한다. 

    "그래."

    다 떠났다. 모두. 그리고 하나가 옆에 남았다. 더욱 커지고 무서워진 빚. 이제 빚은 하루 종일 따라다닌다. 가끔은 잠도 못 자게 겁을 준다. 그러다 가끔은 편지도 보낸다. 편지는 더욱 무섭다. 자기가 말한 날짜까지 갚지 않으면, 내 것 중의 일부를 뺐어 간단다. 화가 나도 단단히 났나 보다. 그렇게 하루하루 빚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돈과 빚이라는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나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만약, 부모님께 미리 교육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돈과 빚의 진짜 모습을 일찍 알았으면 실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돈과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줄 사람이 생겼다. 지금의 아내다. 아내는 어릴 때부터 장모님과 친할머니에게 돈에 대한 교육과 절약하는 방법을 배웠다. 돈을 빌린 적이 없단다. 없으면 쓰지 않았다고 한다. 먹지 않았다고 한다. 참았다고 한다. 왜? 돈과 빚이 주는 고통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본다. 어린 시절을. 외환위기로 집이 어려울 때가 19살 때이다. 한창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많을 때였다. 하지만 당시 많은 것을 하지 못했다. 그 갈증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삶 속에서 행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우울했다. 남과 자꾸 비교했다. 욕망은 커져만 갔다. 

    커진 욕망을 채워가며 행복해했다. 돈의 소비는 잠시나마 행복을 안겨줬다. 지난날의 갈증을 풀어줬다. 하지만 그것은 마약처럼, 잠시만 행복을 주었다. 찰나의 행복. 그것에 중독되어 인생을 산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러면서 성장한다, 단, 자신을 반성할 때만이다. 완벽한 반성을 했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아직도 가끔은, 소비와 욕망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꿈틀 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절제한다. 참는다. 정말 필요한 것인지 몇 번이고 생각해보고 소비한다. 이제 빚도 전처럼 화내지 않는다. 약속을 잘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칭찬도 해준다. 말을 잘 들어서 이번 달에는 점수도 조금 올려줬다고. 그리고 나를 숫자와 함께 몇 등급이라고 평가한다. 

    소파에 않아 당근 마켓 어플을 켠다. 검색어에 맥북에어, 에어팟을 입력한다. 그러다 어떤 하나가 방긋 웃으며 구매욕을 자극한다. 싸다. 깨끗하다.

    "아, 사고 싶다."

    그런데 갑자기 막내아들놈이 날 부르며 달려온다. 

    "아빠."

    소비와 욕망의 불꽃은 이내 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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