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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실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 자존감
    브라더 책상/에세이 2020. 6. 18. 01:26

    새벽 공기를 스쳐가며 인력사무실로 향했다. 겨울 새벽 공기는 군생활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마치 차가운 얼음을 얼굴에 비벼대는 것처럼, 피부에 감각이 없어진다. 차가운 공기는 금세 눈가를 촉촉하게 만든다. 정말 춥다. 몇 걸음 걷지 않았지만, 귀가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전해진다.  횡단보도 앞이다. 건너가면 바로 인력사무실이다. 신호등은 파란불을 켜고 건너오라고 말한다. 갔다. 그리고 인력사무실 앞에 멈췄다. 사무실은 3층이다. 주머니를 뒤지고 담배를 꺼낸다. 불을 붙인다. 삶의 깊은 고통과 고민만큼, 깊은숨으로 한 모금 피운다. 얼마나 깊게 들이마셨는지, 내뿜는 연기가 차가운 새벽 공기와 더해져 작은 구름을 만든다. 

    "아니 여보, 여태 사람만 시켜먹던 사람이 무슨 인력사무실을 나간다고 하는 거야?"

    "괜히 하다가 다치치 말고 그냥 집에 있어."

    아내가 어제 저녁에 한 말이, 다시 가슴속에 비집고 들어왔다. 두렵다. 무섭다. 그리고 슬프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 

    또다시 뇌는 문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가슴은 찍어 낸다. 

    첫 번째 사업실패로 많은 것을 잃고 또 얻었다. 잃은 것은 돈이었고 얻은 것은 경험이었다. 다시는 실패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치열하고 냉철하게 시작한 두 번째 자영업. 역시 실패다. 많은 것을 다시 잃었다. 얻은 것은 없었다. 경험마저도 두 번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만큼 사회는 치열하다. 내가 죽든지 아니면 남이 죽어야 한다. 공생? 그런 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때론 비열하고, 이기적으로 삶을 살아간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으니까. 더 슬픈 건, 그렇게 살아도 성공은 누구에게나 다 허락되지 않는다. 

    손 끝이 뜨거워지는 걸 보니, 벌써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웠다. 세상이 나를 짓밟듯, 묵직한 안전화 신발 밑창으로 담배꽁초를 비벼댄다. 그리고 다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나 자신은, 자존감이라는 감정과 싸우고 있었다. 과거의 자존감과 현실의 자존감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누가 이기든 전투를 빨리 끝내야 한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집으로 다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인력사무실 문을 열 것인지.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를 과대평가합니다. 자신을 굉장한 사람으로 착각합니다. 현실의 자신과는 다르게요. 그러다 보니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환상을 버리고 자신의 지금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세요. 그리고 환상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보세요. 그것이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출발점입니다."

    얼마 전 우연하게 봤던 법륜스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리고 나를 위한 진정한 자존감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자존감은 현실의 자신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다. 그것은 자신 내부의 성숙된 사고와 가치에 의해 얻어지는 개인의식이다. '전에 내가 어땠고', '무얼 했으며', '이런 사람이었는데'라는 건 필요하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실패는 끝이 아니다. 삶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는 것뿐이다. 단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우리는 다시 출발할 수 있다. 일어설 수 있다.

    마음이 점점 평온해진다. 그렇게 현실의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실패했다고. 최선을 다했으니 부끄러워 말자고. 다시 시작하자고. 그리고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고. 늦지 않았다고. 다시 해보자고. 건물 1층 현관문을 열고 3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인력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것은 환상의 세계에 사로잡혀있던 내가, 현실의 자아를 받아들이고, 그곳으로 돌아가는 문을 연 것과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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